화순 모후산
오늘은 따뜻하다...
암봉 조망산행
산행기록
○ 일시 : 2012.5.6 11:00 ~ 13:00
○ 장소 : 화순 모후산
○ 참석 : 3인(날다람쥐,철인3종,산중애)
○ 높이 : 모후산 918m / 누적고도 500m추정
○ 거리 : 8.0km
○ 시간 : 4.0시간(휴식시간 0.5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모후산
○ 코스 : 유마사주차장 - 유마산 - 철철바위 - 중봉 - 모후산 - 용문치 - 유마사 - 주차장
○ 특이사항 : 사찰 조망산행
<모후산>
모후산은 과거 나복산(蘿葍山)·모호산(母護山)·무수산(無愁山)이라고도 불렸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하여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이곳으로 왔는데, 어머니의 품속과 같고 그 덕(德)이 모후(母后)와 같다고 하여 ‘모후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으로 부임한 서하당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하여 ‘나복산’을 ‘모호산(母護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호남읍지』에 “본래 이름은 나복(蘿葍)으로 현 동쪽 15리[약 5.9㎞]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모후산은 현의 동쪽 10리[약 3.9㎞]에 있는 진산(鎭山)이고, 유마사(維摩寺)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관아의 동쪽 10리 순천부와의 경계에 있다. 백아산에서 시작하여 송현(松峴)·운알령(雲戛嶺)을 지나 뻗어 나와서, 고을의 으뜸이 되는 산줄기를 이룬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모후산 정상


모후산(母后山)[919m]은 전라남도 순천시와 화순군의 경계를 이루는 남에서 북 방향의 산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며 밤실산·운월산과 이어져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넓은 산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모후산 생태숲길
모후산 생태숲은 화순군 유마사 인근의 생태숲이다. 화순군에서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산책로를 조성하고 산림문화 교육 등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휴식과 힐링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진 곳이다. 유마사와 목재문화체험장 사이에 있는 이곳은 산속 가족쉼터, 수목 생태 관찰원, 옥잠화 단지, 명상 치유의 숲, 명품 대나무 숲길, 신기한 나무나라 등의 테마로 숲을 일구고 산책로를 정비하여 구간별 특색이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모습으로 볼 수 있게 꾸며져 있으며 걷기 좋게 산책길을 마련한 곳이다.
이곳 생태숲은 모후산 집게봉, 중봉, 정상 등으로 향하는 등산로와 연계되어 있다. 다만 숲을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나무들이 어린 탓에 그늘이 많지 않고 관리에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제법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수종이 다양한 어린나무들이 자리를 잡으면 사계절 다른 모습의 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여유롭게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좋은 여행지가 될 것이다.(대한민국 구석구석)

모후사 해련부도(보물)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를 안치하는 일종의 탑으로 그 형식에 따라 팔각원당형, 석종형 등으로 구분된다.
이 부도는 화순군 남면 유마리 321번지 유마사 입구에 있다. 팔각원당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각부 조각과 구성비가 뛰어난 고려 전기의 작품이다.
이 부도는 원래 유마사지 서쪽 산 경사면에 있었던 것을 1981년 현 위치로 옮겨 온 것이라 하는데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도의 세부양식을 보면 지대석은 8각으로 상면에 각호각형 3단의 괴임대를 마련하여 1석으로 하였으며 하대석은 8각의 각면에 안상을 새기고 그 위로는 측면에 8각의 돌출대를 돌렸다. 상면에 역시 각호각형의 3단 괴임대를 조출하여 하대를 삼았다.
중석 받침의 복련은 8각으로 각면에 귀꽃을 조각하여 화문을 장식하였고 그 위로는 16엽중판을 양각으로 새겨 각호각형의 3단 괴임대에 이어지고 있다.
중석은 8각이며 하단은 8각돌출대를 두르고 각면에는 큼직한 안상을 새겨 하면에 3단의 각형받침과 8판의 연화문이 각출된 앙련의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탑신은 8각으로 각면에 우주를 모방하였으며 전면의 중앙에는 문비형에 열쇠통을 양각하였으며, 그 상단에 「해련지탑(海蓮之塔)」이란 명문을 종(縱)으로 두줄 음각하였다. 이로 보아 이 부도는 해련이란 스님의 사리탑이 분명한데 아쉽게도 해련스님의 행적을 확인할 수 없다.
옥개석은 넓고 평박한 편으로 상면에 기왓골이 없고 우동이 뚜렷하며 하면은 수평인데 엷은 3단의 받침을 마련하였다. 상륜은 유실되고 없다. 이 부도는 통일신라 9세기 경에 발달한 8각원당형의 전형양식을 그대로 고수한 예로서 쌍봉사의 철감선사부도가 바로 인근에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성연대는 이 사찰의 창건시기와 같은 고려시대 전반기로 추정된다.
크기는 전체높이 249cm, 기단부 높이 79cm, 탑신부 높이 170cm이다.(화순군)

유마사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에 위치한 모후산에는 유마사가 있다. 유마사는 백제 무왕 때이던 627년 중국에서 온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창건한 사찰이다. 1919년에 기록된 「유마사 봉향각 창건 상량문」에 따르면 유마사는 627년(백제 무왕) 창건되었다. 그러나 백제 때의 유물은 전해지지 않아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고려시대의 석탑, 석등 등은 남아 있어 적어도 고려시대 전기에는 유마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마사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승려들의 수행도량으로 이용되면서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전란으로 전각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후 재건을 통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지역N문화)

유마사는 중국에서 온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세운 것이라 전해진다. 유마운은 중국 요동의 태수였다. 늦은 나이에 딸 보안을 얻었는데, 아이가 태어나 백일도 되지 않았을 때 부인이 세상을 떠 홀로 보안을 키웠다. 보안은 어렸을 때부터 불심이 매우 깊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마운의 친구 진성주가 죽어 문상을 가려 했다. 그러자 보은이 상가에 가면 사당 뒤에 담마루에 있는 일곱 번째 기왓장 밑에 진성주가 환생한 업신이 있을 것이니 꼭 보고 오라 일렀다. 유마운은 문상을 마친 후에 딸의 말대로 기왓장을 들었다. 그곳엔 일곱 또아리를 튼 황구렁이가 있었다.

유마운은 정직하고 착했던 진성주가 구렁이로 환생했을 리 없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딸을 문책하자 보안은 착하고 백성들에게도 존경받던 진성주가 구렁이로 환생했다면, 사람을 많이 죽이고 백성의 원성을 받는 아버지는 더한 것으로 환생하지 않겠냐며 도리어 아버지를 꾸짖었다. 그 말을 들은 유마운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과업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리고 딸이 알려준 방법을 따라 가진 재산을 모두 나누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딸과 함께 먼 길을 떠났다. 유마운과 보안은 긴 기간을 걸어 화순군에 위치한 모후산에 다다랐다. 두 사람은 모후산에서 나무를 해 살고 있었는데, 중국의 재상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임금은 그들에게 양식과 절을 하사했다. 그 절이 바로 유마사이다.

화순 유마사 봉향루 전경
많은 사람이 절에 찾아왔고, 법당을 돌볼 사람으로 스님 응일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응일은 보안에게 반해 법당은 내팽겨치고 보안의 뒤만 쫓았다. 그의 마음을 알아챈 보안은 어느 날 밤 그를 불러냈다. 보안은 채로 우물에 비친 달을 건져 올리면 그대의 아내가 되겠으나, 자신이 건지면 그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불도를 닦는 데 전념하라 하였다. 응일은 흔쾌히 수락하고 채로 달을 건지려 했으나 실패했다. 한편 보안은 한 번에 채로 달을 건져 올렸다. 응일은 보안과 혼인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응일은 보안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앓아 누웠다. 그를 지켜보던 보안이 응일을 법당으로 불러들였다. 그런 다음 탱화를 찢어 바닥에 깔고 옷을 벗고 응일이 자신을 탐하는 모습이 딱하니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놀란 응일은 어찌 탱화 위에 누울 수 있겠냐 했다. 그러자 보안이 “그림 속 부처는 무섭고 살아있는 부처는 무섭지 않느냐”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고는 관세음보살로 변하여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응일은 관세음보살의 말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불법을 닦는데 열중하였다.
(지역N역사)

물흐르는 소리가 철철철 난다는 철철바위

과거 물이 '철철' 흘렀지만 요즘엔 '찔찔' 흘러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사람이 좀 무섭다

애기똥풀

수틱을 수리하는건지 청소하는 건지?

길이 잘정비 되어 있다

유머사 정상에서

원래 이름은 나복산(羅0山)이었지만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내려와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남짓 머물렀기 때문에 모후산으로 명명됐다. 그만큼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다는 의미이다.

강우레이더 신설공사가 진행중. 주암호가 보인다
모후산 하면 '동복 삼복(三福)'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중에 진상돼 당시 동복현감의 골칫거리였다고 전해온다. 복청(福淸·모후산 토종꿀) 복삼(福蔘·천종산삼) 복천어(福川魚·동복천의 민물고기)가 바로 그것이다.(근교산)

모후산 유마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공화국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가 있었던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다.

모후산은 고려(개성)인삼의 시배지로 유명하다. 정확한 위치는 모후산 정상에서 산행팀 경로와 반대방향인 북릉 쪽에 위치해 있다. 이는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 쓴 '증보문헌비고'와 개성부 유수를 지낸 김이재의 '중경지(中京志)'에 표기돼 있다. 3년 전 이곳에선 120년 된 2억5000만 원 상당의 천종산삼 8뿌리가 발견됐다고 한다.(근교산)

모후산에서 발견한 천종산삼 11뿌리(2025년) / 감정가 1억 2000만원
화순 모후삼의 고려삼의 원조격인 동복삼의 시배지로 백제시대부터 산양삼을 재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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