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0차 해남 두륜산
비온뒤 맑은 날씨 시원한 조망
오늘의 야생화 국수나무 씀바귀 병꽃나무 산딸나무
<두륜산(頭輪山)> 두륜산(頭輪山)의 지명은 정약용이 편찬한 『대둔사지(大芚寺地)』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두(頭), 중국 곤륜산에서 륜(輪)을 빌어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한편 『1872년 지방지도』[해남현]에는 지금의 두륜산에 있는 대둔사가 기재되어 있는데 절 이름을 따서 대둔산(大芚山)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절 이름이 대흥사로 바뀌면서 대흥산(大興山)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가련봉(迦蓮峰)[700m)이다. 산지는 대부분 식생으로 덮여 있는데 능선을 따라 기반암이 일부 노출하여 암봉과 암벽을 이루고 있다. 주봉인 가련봉을 비롯하여, 북쪽으로 두륜봉(頭輪峰)[630m]·고계봉(高髻峰)[638m]·노승봉[685m]이 있고, 남쪽으로 도솔봉(兜率峰)[672m]·혈망봉(穴望峰)[379m]·향로봉(香爐峰)[469m]·연화봉(蓮花峰)[613m] 등 8개의 봉우리가 땅끝기맥 남단에서 남해를 굽어보며 솟아 있다. *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오랜만에 가련봉에..., 두륜산의 여덟봉우리(고계봉,노승봉,가련봉,두륜봉,도솔봉,연화봉,혈망봉,향로봉)중에 최고봉인 가련봉
산행지도
코로나 영향인지 사람들이 없어 입구 주차장까지 바로 도착
일주문이 여러개 인거 같다
그늘 터널속을 걷는 여름산행. 매표소에서 2km 구간의 숲길은 한여름이 제격인 계곡 숲길이다
계곡도 이미 절정에 올라 있다.
대사찰의 역사를 말해주듯 부도탑이 많이 있다.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이라는 봉우리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비로자나불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함
<초의대사> 대흥사 13대 종사로 법명은 의순(意恂)이지만 법호인 초의(草衣)가 더 잘 알려졌기에 보통 초의선사라고 부른다. 한국의 다례인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 꼽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지은 차서(茶書)인 다신전과 동다송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내용은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 20여 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출처 : 나무위키
산행안내도대흥사를 중심으로 산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도솔봉 지역은 통제구역이다.
돼지바위에서 뽀로로 바위, 혹은 미어캣바위로 바위이름 개명
두륜봉에서 노승봉 가련봉을 배경으로
두륜산의 명물 구름다리(자연석으로 아루어진 돌다리). 하얀구름이 바위의 틈사이를 넘나든다 하여 예전에는 백운대라 하기도 했다.
폭주기관차 두륜봉과 만일재(만일재 억새는 무등산, 천관산, 월출산과 더불어 손꼽히는 두륜산 억새 명소라 한다)
안전시설이 많이 설치되어 이젠 편안한 산행지가 되었다.
대흥사 모습.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기록을 따르고 있다. 여러 고승들에 의해 중건을 거듭하며 교종과 선종을 모두 아우르는 대도량이 되었으며 특히 임진왜란의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 이후로 사찰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노승봉에서도 한컷
우회계단이 설치되었지만 추억을 기억하며 통천문을 통과. 일명 두륜산 통천문. 나무데크계단이 많아지면서 안전해지긴 했지만 산행의 재미는 반감되었다.
두륜산 흔들바위.
<천동 천녀의 전설> 이 흔들바위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 온다. 옛날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천동과 천녀는 천상의 계율을 어겼고, 옥황상제는 “너희들은 죄를 지었으나 해남 두륜산에 내려가 하루 만에 부처님을 조각하면 용서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륜산에 내려온 천동과 천녀는 손을 풀기 위해 흔들바위를 굴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하루 만에 부처님을 조각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일단 지는 해를 만일암 터挽日庵址의 천년수에 묶어서 시간을 벌기로 했다. 이후 천녀는 북미륵암의 바위를, 천동은 남미륵암의 바위를 골라 조각을 시작했다. 꼼꼼한 성격의 천녀는 하루 만에 부처님을 조각할 수 있었지만, 성격 급한 천동은 너무 거창하게 조각을 구상한 나머지 천년수에 묶어둔 해가 저물 때까지도 조각을 완성하지 못했다. 결국 천동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두륜산 산신이 되었다. *출처 : 월간산
만일사지터의 1200년에서 1600년 추정하는 느티나무(천년수). 직접보니 감동적
병꽃이 너무 화사하여 오늘의 야생화 타이틀을 주자 않을 수 없었다
.<두륜산의 일곱 대(臺)>
①능허대(凌虛臺) : 『대둔사지』에는 능허대를 "가련봉의 정상이다. 70~80명이 앉을 수 있는 대반석(大盤石)이 있고, 3면이 병풍처럼 되었다. 오직 남쪽에만 바람이 통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②백운대(白雲臺) : 『대둔사지』에는 "두륜봉의 정상이다. 2개이 바위가 마주 대하여 서있고, 그 사이는 10여보이고 높이는 백인(百忍)쯤 된다. 그 위로 바위 하나가 가로놓여 다리가 디었다. 나이가 적고 건강한 사람만이 다리 위를 걸을 수 있다. 항상 흰 구름을 삼켰다가 토(吐)하므로 백운대라 하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현재 이름은 구름다리.
③만경대(萬景臺) : 『대둔사지』에는 "현재 만경대의 터를 알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죽미기』에는 미황사의 창건설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대(臺) 아래 경전을 실은 석선(石船)이 와서 모래언덕에 이르렀다. 소가 누운 곳에 법장사(法藏寺)를 세우니 오백여년이요, 경전을 대둔사로 옮겨 들여와 보관하니, 또한 그 년 수를 알지 못하나, 경전이 흐트러지고 흙에 매몰되니 오늘에 이르러 경함(經函)을 넣은 상자가 썩고 헤어져서 보존된 것이 12개뿐이다."
④봉황대(鳳凰臺) : 『대둔사지』에는 봉황대가 "만일암의 왼쪽 수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황대는 가련봉의 능허대에서 흘러내린 맥이다. 여기에는 샘이 두 군데 있고, 샘 바로 아래에 계조암터가 있다.
⑤극락대(極樂臺) : 『대둔사지』에는 극락대가 "북암의 왼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암의 좌측 바위를 말하고, 이곳에는 최근 복원한 3층 석탑이 있다. 이 3층석탑은 북암의 동탑에 해당된다. 최근 복원하면서 드러난 지대석이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생겨서 관심을 끌었다.
⑥학사대(學射臺) : 『대둔사지』에는 학사대가 "북암의 오른쪽에 있다"고 기록되었다.
북암의 우측 바위를 말하며, 바로 앞에 미륵마애불을 모신 용화전이 자리잡고 있다. 용화전의 뒤편 바위가 석사자와 동석인 것으로 추정된다.
⑦대장대(大藏臺) : 『대둔사지』에는 대장대를 "도선암(導船庵)의 뒤에 있으며, 바위에 범자(梵字)가 새겨졌다. 그 밑의 바위가 배(船)의 모양과 같다"고 기록하였다. 대장대는 심적암터이 뒤편에 있는 큰 암벽을 말한다. 심적암터의 우측으로 약 15분 여쯤 오르면 이곳이 나타난다. 대장대 바로 아래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암자 터가 있다. * 출처:해남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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