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300산 261차 순창 백방산
잣나무가 많아 잣백자를 써서 백방산이라고
<백방산(栢芳山)>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와 쌍치면 중안리 경계에 있는 산. 백방산(柏芳山)은 예전에 잣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으로 잣방산, 잡방산, 접방산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 지명 총람』의 기록과 지역 주민들이 잣방산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잣나무가 있고 꽃망울처럼 예쁜 형상의 산’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이 이루어지면서 잣나무 백(柏)으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지역 주민들은 이 산을 잣방산이라 부른다. *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지역주민들은 아직도 잣방산이라 부른다고 함
백방산 개념도(조진대님 자료)
창동제를 들머리로 싸리재로 올라 능선을타고 백방산에 오를 것이다.
간혹 선산가는 길로 알바도 하면서
이건 또 무슨 외계생명체란 말인가?
대밭숲을 치고 올라가는게 만만치 않네요
멀리 백암산과 내장산 능선이
추월산에서 이어져오는 봉우리들
하산길의 암릉바위벽이 천연 요새를 말해주는듯
되돌아본 백방산. 서남쪽에서 보는 백방산은 필봉(첨봉) 느낌.
<"장자골 호랑이와 어린이" 전설> 옛날 복흥면 백방산에 있는 장자골 마재 마을에 사는 조희동 부부에게 세 살짜리 딸이 있었다. 봄철 농번기를 맞아 부부는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했고, 어린 딸 혼자 집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딸아이는 밥을 지으러 우물에 물 길러 나간 엄마를 따라 나섰다 실종되었다. 아무리 찾아도 딸이 보이지 않기에 점치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호랑이가 물어 갔으나 무사하다며 백방산 장자골로 가 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장자골을 찾았더니 과연 골짜기 안쪽 널따란 바위 위에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는 상처 하나 없었으며 호랑이 품에서 잤는지 온몸에 호랑이 털이 묻어 있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무탈하게 잘 살았다. *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소백산에도 도착 한컷
참나무 계통도 주목 못지 않은 느낌을 줍니다. 아마 죽어100년 정도...
가인 연수원도 저기 어디 사이에 있을테고
옥녀봉에도 도착
되돌아본 온순한 백방산
옥녀봉 아래엔 가인 김병로선생 생가가 있다.
가인 김병로(金炳魯)[1887-1964] 선생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 이었다. 힘든 유학생활을 거쳐 변호사가 된 김병로 선생은 독립운동가들과 농민, 노동자들을 변호하며 법정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광복 이후에도 좌우를 포용하고 독재 정치를 비판하면서, 할 말을 하고 할 일을 다 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청년 의병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장까지)
훈몽재(訓蒙齋)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가 1548년(명종 3)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 추령천 변에 지은 강학당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김인후의 5세손 자연당(自然堂) 김시서(金時瑞)[1652~1707]가 1680년경 수축(修築)하고 그 옆에 초당(草堂)을 새로 지어 하서의 유업을 계승하였다. 김시서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에게 수학(受學)하여 학문과 기절(氣節)이 높아 당시 소하서(小河西)로 불렸다.(펌)
김인후가 훈몽재를 지은 곳은 대학암 위쪽이었다고 하는데, 김인후는 이곳에 살면서 다음과 같은 「자연가(自然歌)」를 지었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물 절로 그 속에 자란 이 몸도 절로 절로[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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